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주아오 대교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[[영국령 홍콩]] 당시인 [[1983년]] 홍콩 내 민간 기업들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으며 지금과 같은 해저터널+교량 방식이 아닌 [[신계(홍콩)|신계]] 북서부인 튄문과 주하이 사이에 있는 [[섬]][* 지도 상 다리 북쪽에 보이는 섬이다.]을 경유하는 것이었다. 현재와 달리 [[1980년대]] 첫 구상 당시 마카오는 구상에서 없었으며 오히려 튄문 부근에서 Y자로 갈라져서 [[주하이]]에서 [[선전시]]까지 바로 들어가는 구상이 있었다. 즉 최초 계획은 홍콩-중국 간 교량이었을 뿐이었으며 서부 광동성 지역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. 이후 주하이 등 서부 광둥성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는데 [[천안문 6.4 항쟁|천안문 사태]]로 홍콩 측 민간투자자들이 참여를 꺼려 장기간 보류되었다. 그러다가 [[1997년]] [[홍콩 반환]]으로 홍콩의 [[주권]]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부터 서부 광동성-홍콩 간 연결을 원하던 중국 중앙정부가 주도하여 [[2002년]] 내친 김에 홍콩과 교류가 많으나 육로로 연결이 안되어 [[페리(선박)|페리]]에만 의존하던 마카오까지 커버하여 현재의 안이 결정되었다. [[2009년]] [[12월 15일]]에 착공하여 [[2018년]] 개통되었다. 주장 강 하구에 광저우와 선전, 마카오, 홍콩 등 유수의 [[항구도시]]들이 있어 [[선박]] 교통량이 많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 총연장 55km 중 6.7km 구간은 해저터널로 건설했다. [[2016년]] [[9월]] 교량 구조물 공사를 끝낸 데 이어 [[2017년]] [[7월 7일]]에 해저터널 구간이 완성되어 전 구간이 [[http://www.yonhapnews.co.kr/bulletin/2017/07/08/0200000000AKR20170708032800083.HTML?input=1195m|연결되었다.]] 개통에 앞서 해저터널을 잇는 [[인공섬]]이 [[물]]에 잠겼다는 논란도 있었다.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15&aid=0003923437|#]] 이 때문에 개통식은 2018년 [[10월 22일]]에 시행했으나 정식 개통은 2일 뒤인 2018년 [[10월 24일]]에 이루어졌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